시대를 관통하는 연대와 원칙, 마은혁과 노회찬이 남긴 깊은 울림
| 목차 |
|---|
| 1. 마은혁과 노회찬, 예기치 않은 인연의 시작 |
| 2. ‘정치적 중립성’ 논란과 후원금의 배경 |
| 3. 마은혁의 노동 운동 경력과 진보적 가치 |
| 4. 노회찬의 정치 철학과 ‘6411 정신’ |
| 5. 원칙과 소신이 남긴 메시지 |
1. 마은혁과 노회찬, 예기치 않은 인연의 시작
마은혁 헌법재판관과 고(故) 노회찬 전 국회의원은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 가치와 노동 운동의 역사를 공유하는 두 인물입니다. 특히 마은혁 재판관이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노회찬 전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이 논란이 되면서, 두 사람의 예기치 않은 인연과 그 배경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이 인연은 단순한 정치적 후원 이상의 깊은 인간적 유대와 신념의 공유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은혁 재판관은 1980년대 후반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의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노동 운동에 투신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이 시기 마 재판관은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한 이론 교육 및 선전 활동에 참여했으며, 노동자의 권익 향상과 노동 기본권 보장을 위한 활동에 주력했습니다. 노회찬 전 의원 역시 한국 진보 정치의 상징적인 인물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정의당을 거치며 일관되게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대변해 왔습니다. 두 사람이 걸어온 ‘진보’의 길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노동 운동의 역동적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교차점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공통의 역사적 배경과 가치 지향은 두 사람을 엮는 끈끈한 인연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2. ‘정치적 중립성’ 논란과 후원금의 배경
2009년, 당시 현직 판사였던 마은혁 재판관이 노회찬 전 의원이 운영하는 ‘마들연구소’의 출판 기념회에 후원금을 기부한 사실이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 논란으로 불거졌습니다. 이 사건은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촉발시켰습니다. 그러나 마은혁 재판관은 청문회에서 이 후원금이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가 아닌, 오랜 기간 맺어온 노회찬 전 의원과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인연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해명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후원금 기부 시점이 마 재판관의 부친상과 배우자 사별이라는 개인적인 큰 아픔을 겪던 직후였음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노회찬 전 의원이 이 두 번의 큰 슬픔에 문상을 와 위로를 건넨 인간적인 교류가 있었으며, 후원금은 이러한 개인적인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마들연구소에 전달된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는 후원금의 성격이 단순한 정치적 행위가 아닌, 개인적인 친분과 위로에 대한 응답이었음을 강조하는 대목입니다. 대법원 역시 이 사안을 징계 사안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으나, 당시 법원장으로부터 ‘주의’를 촉구하는 구두 경고를 받았고, 마 재판관은 이를 겸허히 수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논란은 법관의 ‘정치적 중립’과 ‘개인의 인연’ 사이의 경계에 대한 복합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3. 마은혁의 노동 운동 경력과 진보적 가치
마은혁 재판관의 이력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핵심 요소는 사법고시 합격 이전인 1980년대 노동 운동가로서 활동했던 경력입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졸업 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에서 활동하며 노동자의 권익 향상에 힘썼던 그의 과거는 그가 법관으로서 내린 일부 진보적 성향의 판결에 대한 이해의 바탕이 됩니다.
실제로 그는 서울남부지법 판사 재직 시절, 미디어법 처리 반대 농성으로 기소된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게 ‘공소권 남용’을 이유로 이례적인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판결은 당시 보수 언론과 정치권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으나, 마 재판관은 노동자의 권리와 공권력 행사의 정당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바탕으로 한 사법적 소신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판사 임용 후 헌법 가치를 적용해 재판했다’는 입장을 통해, 과거의 진보적 경험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가치를 재판에서 더욱 충실히 구현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음을 피력했습니다. 그의 판결과 경력은 단순한 이념적 편향이 아닌,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했던 법관으로서의 투철한 소명의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큽니다.
4. 노회찬의 정치 철학과 ‘6411 정신’
노회찬 전 의원의 정치 철학은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그리고 ‘서민 중심형 복지 동맹’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는 촌철살인의 언변과 서민적인 행보로 ‘진보 정치의 거목’으로 불렸으며,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정치적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그의 상징적인 철학 중 하나는 ‘6411 정신’입니다. 이는 6411번 버스를 타고 새벽 일찍 출퇴근하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노동자, 특히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및 여성 노동자의 삶을 대변하는 노회찬의 정신적 지표였습니다.
노회찬은 정치를 ‘현실을 바꿔내는 무기’로 인식했으며, 경제적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1가구 1주택 법제화’와 ‘전월세 상한제’ 등 부동산 문제에 대한 진보적인 정책을 제시했으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 발의와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 주도 등 검찰 및 사법개혁, 그리고 정치 개혁에도 앞장섰습니다. 그는 진보 정치를 이상주의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현실을 바꾸는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로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마은혁 재판관과의 인연과 그를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는 이처럼 ‘낮은 곳을 향하는’ 노회찬의 확고한 정치 철학과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5. 원칙과 소신이 남긴 메시지
마은혁과 노회찬이라는 두 인물의 연결고리는 단순한 ‘매우 쉬운 방법’으로 정의될 수 없는 복잡하고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들의 만남과 논란은 한국 현대사에서 진보적 가치를 추구했던 두 엘리트가 짊어져야 했던 사회적 책임과 개인적 고뇌를 보여줍니다. 마은혁 재판관은 법관으로서의 중립성과 인간적인 도리 사이에서, 노회찬 전 의원은 정치적 이상과 현실의 벽 사이에서 고군분투했습니다.
마 재판관은 공직자로서의 원칙과 인간적인 연대를 분리하려 했으며, 노 전 의원은 서민과 약자를 위한 확고한 소신을 일관되게 지켰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법관의 중립성, 정치인의 소명의식,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향한 연대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묻게 합니다. 궁극적으로 이들의 관계는 개인이 지향하는 가치와 공적인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성찰의 메시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는 바로 ‘원칙을 지키려는 소신’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력임을 깨닫게 합니다.